넛지 (리처드 탈러 외) reading

리처드 탈러 외 (2009)


1.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어쩌면 이 책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목적이 행동경제학 이론을 활용하여 타인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어떤 신비한 기술에 대한 마케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소변기에 파리 스티커를 붙이는 류의 이야기들이 훨씬 흥미롭기는 하겠지만, 책 제목인 ‘넛지(nudge)’보다 저자들의 주장을 더 직접적으로 담고 있는 개념은 오히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로 보입니다.

 인간은 늘 실수하고, 유혹에 빠지고, 부하뇌동하는 존재이고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시장에는 이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자들을 ‘넛지’하려는 인센티브가 만연합니다. 그러므로 저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란 결국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누군가가 더 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2. 세 개의 챕터만을 읽어야 한다면?

(1) 8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는 신용 시장

“삶이 필요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교묘하게 이용당한다.”

 이 챕터는 시장이 복잡해질수록 교육 수준이 낮은 사회적 약자들이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과연 각 개인이 언젠가 더 완벽한 인간이 되어 스스로 조심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요? 저자들은 누군가 인간을 그 자신의 어리석음이 초래할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4 넛지가 필요한 순간

“시장이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긴 하지만 동시에 종종 기업들에게 인간의 약점들을 뿌리 뽑거나 그 효력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것들을 부추길 만한 (그리고 거기에서 이익을 얻을 만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어렵지만 미리 연습할 수 없고, 결과로부터 교훈을 얻기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택들 앞에서 곤경을 겪습니다. 이 챕터에서 저자들은 방임도 규제도 아닌 선택 설계를 활용한 자유주의적 개입이야말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제3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3) 5 선택 설계의 세계

“당신이 다른 사람들이 취하는 선택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당신은 선택 설계자이다. 그리고 당신이 인간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신의 설계는 인간의 행동 방식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

 이 챕터는 사람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넛지할 수 있는 선택 설계의 기본 원칙들과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폴트 설정의 중요성과 선택과 그 결과의 매핑을 손쉽게 도울 수 있도록 하는 RECAP(Record. Evaluate. Compare Alternative Prices) 보고서에 대한 소개 등 책 후반부에 기술된 실제 사례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부분입니다.


3. 사서 읽을 가치는?

있습니다. (3.5/5.0)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행동경제학 입문서로서도, 타인을 좋은 방향으로 넛지하려는 선택 설계자와 나쁜 방향으로 넛지되지 않으려는 호구들에게도 모두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자 Richard H. ThalerNYT 컬럼 좋은 넛지,나쁜 넛지”도 함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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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도 안되는 일 keiko

운동하며 노력해도 안될 때, 
그 때마다 그래도 가장 효과적인 마음 수습 방안은 그냥 기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우울하고 분통 터질 때 더 고민하고 자책하면 아마 그만두게 되겠지.

그만두지 않는 게 가장 큰 성취이고 가장 의미있는 노력임을 잊지 않으려면 노력해도 안될 때 다친 마음을 빨리 털어버려야 하고, 운동을 중지하지 않으면서 다친 마음을 털어버리는 데에는 기본기 연습만한 게 없다. 


오개념 keiko

 가끔씩 내 운동 영상을 찍어보면 그렇게 한심해보일 수가 없다. 부자연스럽고 기괴한데 비효율적이다. 영상으로 찍어 직접 보기 전에는 그 몰골에 대해 절대 상상하기 어렵다. 결국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를 탓하게 된다. 

 하지만 영상을 상세히 분석해 보면 사실은 내가 머리 속에서 생각하는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움직임 이전에 생각과 이해 자체가 틀려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뇌피셜로 창조한 무언가를 독자적인 깨달음이라 믿고 싶어하는 에고의 문제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reading



유발 하라리 (2018)




1.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파시즘과 공산주의 이후 영원할 것 같던 자유주의 패키지(민주주의, 세계화, 시장경제, 복지)가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국가들은 민족주의와 전통적 종교가 제공하는 이야기 속으로 퇴행해 들어가 과거 어느 순간 존재했던 자신들의 황금기를 되찾아야만 할 것처럼 행동하고요. 우리는 히틀러와 체게바라의 순간을 지나 트럼프의 순간에 처했습니다. 
 
 저자는 인류가 직면한 전지구적 도전 (핵전쟁, 기후변화, 기술혁신에 따른 파괴)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부정적인 흐름이며, 특히 극도로 발전한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융합이 초래할 초유의 문제들 앞에서는 더욱 쓸모 없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책의 제언은 어떻게 더이상 우리가 민족, 종교, 기업, 돈 등 실체가 없는 허구의 이야기에 삶의 의미를 의탁하며 실재하는 존재들에 막대한 고통을 주는 짓을 그만두게 할 것인가로 귀결됩니다. 저자의 관점에서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 이기 때문입니다. 


2. 세 개의 챕터만을 읽어야 한다면?


(1) 일 l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땐 일이 없을지도 몰라

 “21세기의 전례없는 기술적, 경제적 파괴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모델을 최대한 빨리 개발해야 한다. 이런 모델들은 일자리보다 인간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민감한 주제인 일자리 문제를 통해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 끝에 인간이 생산자로서도, 소비자로서도 사회와 무관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다루며, 관련해서 최근 관심 받는 보편 기본소득제(UBI)에 대해 논하고 있는 챕터입니다. 


(2) 민족주의 l 지구 차원의 문제에는 지구 차원의 해답이 필요하다

“개별 국가는 지금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전을 해결하기에 올바른 틀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지구적 정체성이 필요하다. 국가 단위의 제도는 전례없는 일련의 지구적 곤경을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챕터를 통해 민족개념이 부족 단위로 해결 불가능한 과업 수행을 위해 창작된 이야기일 뿐임을 논하며, 인류 생존을 위해 이런 지역적 충성심을 지구 공동체에 대한 실질적 의무감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의미 l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런 다음 어떤 이야기를 들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야 할 첫 번째 사실은, 당신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내 역할을 맡아 수행하며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 민족 혹은 내가 창작해낸 자아일 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실체는 아닙니다. 오직 실체만이 고통받습니다. 저자는 이 챕터에서 고통의 주체를 좇아 허구와 실체를 구분해야 하며, 허구의 이야기를 위해 실체가 고통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3. 사서 읽을 가치는?

있습니다. (4.0/5.0)

 방대한 내용과 분량에도 매우 흥미롭고, 전작의 주요 논점이 잘 녹아 있어 이 책만으로도 이해에 무리가 없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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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버리기 기술 (마크 맨슨) reading


마크 맨슨 (2019)


1.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모두 죽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소수의 사람에게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중요할 뿐이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 삶 역시 무의미하다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삶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살아 남으려면 희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희망의 이름으로 지어낸 이야기와 의미를 덧붙이며 삶에 중요성과 목적을 부여하는 것이지요. 저자에 따르면 이 희망은 본질적으로 종교의 형태(예: 영적 종교, 이념 종교, 대인관계 종교)로 제공되고 있기에 종교와 그 폐해와 한계를 공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희망에 의존하는 인생이란 십자군 전쟁처럼 사소한 차이가 초래하는 극심한 갈등을 겪거나, 공산주의처럼 그 희망에 내재된 결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불편한 진실’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제3의 길을 제시하려 합니다. 그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고통을 피하지 않으면서 그저 가치 있고, 숭고하고, 선한 것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희망하지 말고, 그저 더 나은 삶이 되라고 말입니다.


2. 세 개의 챕터만을 읽어야 한다면?

(1) 기대하지 말고 모든 삶과 경험을 사랑하라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해서 희망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희망이 모든 것이 엉망이 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 책 전반부의 주제인 희망이 어떻게 작동하며, 어째서 자기 파괴적인가에 대해 요약하는 챕터입니다. 몇 단계를 거쳐 다소 장황하게 펼쳐지는 저자의 요지가 잘 함축되어 있어 다른 부분을 읽다가도 자주 다시 찾아봤던 부분이었습니다.


(2)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더 강해지는 시스템, 안티프래질

“성인은 고통의 한계치가 엄청나게 높다. 삶이 의미 있으려면 고통이 필요하고, 어떤 것도 무조건적으로 통제되거나 흥정되어선 안되고 그럴 수도 없으며, 결과와 무관하게 그냥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antifragile)’ 개념을 빌어 인간의 마음 또한 고통을 받아들일수록 더 견고해진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은 인생의 보편 상수이며 피하려 할수록 점점 더 그것을 다루기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3) 삶에서 포기할 것을 선택하는 것, 그게 진짜 자유다

“궁극적으로,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자유는 헌신, 즉 삶을 살아가며 희생하기로 선택한 것에서 나온다.”

 저자는 북한에 자유가 없는 이유는 쾌락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진짜 자유는 포기를 통해 더 크게 헌신함으로써 심오한 깊이를 얻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3. 사서 읽을 가치는?

당신의 판단에 맡깁니다. (2.5/5.0)

 개인적으로는 전작 ‘신경 끄기의 기술’에 유발 하라리를 끼얹은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다소 산만하고, 몇몇 핵심은 전작의 메시지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아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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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reading

마크 맨슨 (2017)


1. 이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역사 상 유례없는 번영의 시기에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행하고 우울한 현대인에게 저자는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향해 “꺼져”라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진짜로 중요한 것에 쓰기 위한 신경을 따로 남겨 놓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신경 끄기’는 다른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선택과 집중’과 사뭇 다른 개념입니다. ‘선택과 집중’이 성취를 위한 몰입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의 ‘신경 끄기’는 포기를 위한 수용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핵심은 ‘세상은 언제나 엉망진창’이고, ‘나는 평범한 존재’이며, ‘나의 인생 역시 계속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한 내가 비범한 성공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쟁취해야 한다며 바람 넣는 것들에 헛된 신경 쓰며 살지 말라는 것이지요. 결국 신경 써야할 가치는 가족, 절친, 취미 생활 같이 아주 평범한 것이거나 정직, 책임감 같이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메시지입니다. 


2. 세 개의 챕터만을 읽어야 한다면?

 (1) 할아버지는 말했지 “사는 게 다 그렇다. 가서 삽질이나 해”

“현재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 덕에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기대에 못 미치고, 부족하고,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내면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관찰하고 기대하는 바와 달리 산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사실 세상은 늘 엉망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든 인생에서 문제와 고통은 끝나지 않고 영원한 해피엔딩 따윈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야 말로 ‘신경 끄기’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2) 당신은 유망주도 아니고 실패자도 아니다

“충고하건대, 자신이 특별하다거나 남다르다는 생각을 버려라. 삶의 기준을 평범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다시 정하라. 자신을 유망주나 재야의 천재로 보지 말라. 비참한 피해자나 형편없는 실패자로도 여기지 말라.”

  극단적이고 예외적이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자신의 평범함을 못 견뎌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좁고 희귀한 것으로 규정할수록 더 많은 삶의 요소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뿐이라고 경고합니다.


 (3) 더 나은 삶을 원한다면, 더 나은 가치에 신경 써라

“좋은 가치는 ①현실에 바탕을 두고 ②사회에 이로우며 ③직접 통제할 수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불가능한 기대와 비현실적 욕망에 신경을 끄고 그 빈 자리를 더 나은 가치로 대체하라고 제안합니다. 여전히 고통스럽더라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고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전히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조금 더 의미 있는 문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3. 사서 읽을 가치는?

있습니다. (3.0/5.0)
 
 어째서 우리는 신경 꺼도 될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고 비참함 속에 갈가리 찢기는 심정으로 사는 것일까요? 이 책을 성공과 승리를 갈망하는 분들보다 열패감과 불안 속에 계신 분들께 더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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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재앙 writing

"더이상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겠어요."

 어느 날 뜬금없이 떨어진 뜬금없는 프로젝트의 맥락을 파악하려고 던진 질문에 조직장은 위와 같이 답변했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1. 서로 잘못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경우
2. 상대가 의도적으로 나와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 경우

 만약 내가 느끼는 좌절감의 원인이 첫번째 경우라면 나는 그냥 관련 서적과 전문가의 통찰로부터 도움을 받아 개선하면 된다.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배우고, 노력하고, 개선하는 데에는 꽤나 익숙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지경까지 몰려 괴로워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내 실패의 원인은 두번째 경우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연인 관계와 조금 비슷하려나. 서로 스타일이 다르거나 누군가 잘못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면 분명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개선의 가능성이 아예 0%는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 이미 이별을 염두에 두고 아예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자신의 진심을 밝히지 않는다면 아무리 배우고, 노력하고, 개선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 때 내 가장 소중한 친구 A. 난 그를 정말 사랑했고 그의 인생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마음 아파했다. 하지만 난 항상 그가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악의 옵션들을 선택하기 전에 미리 나와 상의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았을까.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내가 오랜 시간 토해냈던 진심어린 조언들을 무시한걸까.

 이 의문은 그가 아무 말도 없이 최악 중 최악의 결정을 말도 안되는 현실인식에 근거해서 내리고 나를 떠나 버리기 전까지 풀리지 않았다. 뒤늦게 그가 떠나버렸다는 소식을 제3자에게 전해 듣고서야 깨달은 해답은 간단했다. 그저 본인 맘대로 자기 인생을 망치고 싶은데 내가 방해되기 때문이다. 내게 말하면 말릴 것이 뻔하니까. 우습게도 우리는 서로 너무 효율적으로 소통했기에 소통에 실패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두번째의 경우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헛될 뿐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렇게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는 이유도 두가지 경우이다. 

2-1. 내가 그래도 되는 사람인 경우
2-2.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결과가 자신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이 중 더 복잡한 상황은 2-2. 케이스이다. 2-1.은 어느 정도 상대방의 태도나 뉘앙스를 통해 '아,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라고 느껴지는 바가 있는 것에 비해 2-2.의 경우는 상대의 진의를 알아서 파악하지 못하면 정말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의 이익, 프로젝트의 성공, 공동의 성취, 이 모든 대의가 사실 상대방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더 일찍 깨달아야 했다. 내 앞의 이 사람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을 수 있다. 내가 제기하는 생산적인 비판을 듣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내가 회사에 거짓말을 하거나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해주기를 원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같이 몸담고 있는 이 프로젝트가 침몰하길 원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단순히 내가 파멸해 버리기를 원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진의는 대부분 말로서 커뮤니케이션 될 수 없는 것들이다. 만약 이것들이 말로서 세상에 나와버리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알아서' 행동하거나, '알아서' 포기하거나, '알아서' 망가질 때까지 모른척 고문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게 필요했던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협상이었다. 

 결국 내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툰 거짓말을 하고, 근본없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침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배를 버릴 때 그 책임은 내 몫이 된다. 내 실패는 내가 적시에 적합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은 대가로 포장될 것이다. 

"나는 몰랐거든요"


진지해지는 단계 keiko

 경험상 생활체육인이 부상을 가장 조심해야할 시기는 "진지해지는 단계"이다. 보통 운동 시작 후 1~3개월 이내에 중단하는 것은 여러 의미로서의 재미나 가치를 못 느끼기 때문인데 이 관문을 지나면 "진지해지는 단계"가 온다. 

 이 단계에서는 즐기는 스포츠 종목이 자신의 정체성 중 일부로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점진적으로 그 활동에 헌신하게 된다. 운동선수로서, 무도가로서, 모험가로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강화해 나간다. 이는 조직 구성원으로서, 가족 구성원 또는 누군가의 친구로서가 아닌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의 정체성에 업데이트되어 충실감을 제공한다.  

 문제는 이 단계 이후부터는 조금 다른 수준의 신체적 역량이 요구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잘 모르면 모험과 무리를 반복하게 된다. 지도자의 커리큘럼에서 벗어나거나, 이것저것 자신의 의견을 추가하며 실험을 해보기도 한다. 사소한 컨디션의 부침에 일희일비한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냈던 최상의 퍼포먼스를 섣불리 베이스라인으로 설정하고 자신을 밀어부친다. 결국 이 시기에 에고를 어떻게 통제하는가가 이후의 지속 가능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죄책감 writing

 
국민학교 3학년 쯤 컴컴한 새벽 아파트 앞에서 엄마 손을 잡고 우두커니 같이 서 있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나온 광경은 산산조각난 방문, 가득한 담배 연기, 속옷차림으로 자리에 누워 우리를 노려보던 부친의 몰골이었다. 엉망진창 날아다닌 뒤 널부러진 집기를 이리저리 피해 집을 나서 엄마와 나는 집 앞 주차장에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우리는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부친의 개짓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더 심한 순간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런데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순간은 엄마와 아무 말 없이 서있던 그 몇분 간이었다. 이후 철이 들며 가끔씩 생각했다. 엄마는 왜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까. 그대로 집을 나와 이혼 했다면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 이혼 경력이 어쩌면 치명적일 수 있는 직업적 상황 때문이었을까. 당신이 직업을 잃는다면 나를 키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무엇보다 나 때문이었을까. 

 남편으로 부터, 지긋지긋한 생업으로 부터 다 벗어나 이제 자신의 삶을 만끽해야 할 시간을 투병으로 보내고 있는 엄마를 보며 다시 그 순간을 떠올려 본다. 그 때 도망쳤었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텐데. 왜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까.


자기계발의 늪 writing

 하지만 맥락 없이 쏟아지는 업무들에 대응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매달린 자기계발과 학습과정은 오히려 회사에게 내가 신뢰할만한 전문가가 아니라는 증거로 작용했다. 직장상사에게는 내가 필요한 수준의 전문성을 실제로 지녔는지 보다 나에게 업무를 수행하게 한 의사결정이 그럴듯해 보이는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는 저서 <Principles>에서 신뢰성(believability)의 개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논란이 많은 문제를 계속해서(최소한 3번의 성공적인 업무 완수 기록이 있는 사람) 성공적으로 완료하며, 어떤 사람이 캐물어도 자신의 접근법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다.

 기획, 전략, 컨설팅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를 쓰고 있었지만 조직과 정치에서 괴리된 개인의 자기계발로는 신뢰성을 획득할 도리가 없었다. 최소한 전문가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흉내에라도 능숙했으면 좋았을텐데. 회사의 모멘텀, 인력과 돈을 투입해 일을 완수해도 된다는 허가가 없이 시달릴 수록 그 늪에 더 깊이 빠져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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